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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리의 뜸한 블로그

포토로그 마이가든



요즘 해먹는 음식들



1. 아마트리치아나: 채 썬 양파를 올리브유에 볶다 투명해지기 시작하면 베이컨이랑 같이 볶는다. 화이트와인을 넣어 다 졸아들 때 쯤 토마토홀과 소금, 후추, 파슬리를 넣고 익히고, 삶긴 파스타를 넣어서 버무려주면 끝. 총 요리시간은 15분 정도-즉, 파스타 물 끓이다가 면 다 삶아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얼추 비슷하다. 화이트와인 없으면 생략해도 전혀 문제 없음. 사실 이름은 확실하지 않은 것이 이탈리아 포스닥한테 물어봤더니 아마도 아마트리치아나일걸? 그래서;;

2. 이건 이름이 없지만 아무튼..역시 파스타. 파스타 대신 밥을 써도 된다. 옥수수캔+참치캔+양송이 채+토마토 썬 것+파프리카 깍둑썰기한 것(옵션:생양파 채)에다가 밥 혹은 파스타를 넣고 올리브유+발사미코+소금(옵션:머스타드)와 버무려주면 끝. 총 준비시간 최대 10분.

요즘 요리시간이 짧은 파스타를 자주 만들어먹고 있는데 아주 흡족하다.

3. 요즘 또 아는 사람한테서 된장을 구했다. 사실 독일에서 된장 구하기가 그다지 어렵진 않은데 게으른 탓에 인터넷 주문이고 뭐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살다 보니 한달 전 쯤에야 처음으로 된장 찌개를 끓였다는 얘기. 좀 오래 걸리는 게 흠이긴 하지만 병조림 gruenkohl을 써서 양파랑 마늘 넣고 만들었는데 뭔가 우거지 된장찌개스러운 맛이 나서 맘에 든다.


폴란드 김치찌개/수영장/비키니 소소


1. 한국에 살던 폴란드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폴란드 킴취치개'라며 해준 음식을 먹어보았다 (이름은 까먹었다;;). 베이컨을 볶다가 Sauerkraut, 양파, 토마토 썬 것과 큐민을 넣어 끓여주면 끝. 알고보니 돈 없는 독일유학생들이 아쉬우나마 자우어크라우트로 김치찌개스러운 걸 해먹고들 한다고 한다. 나도 돈없는 유학생이라 김치는 됐고(...) 자우어크라우트로 김치볶음밥스러운 것도 해먹고 있었는데 덕분에 메뉴가 하나 더 늘었다.

2. 학교 수영장이 방학이라고 문을 닫아서 비싸고 먼 실내 수영장이나 물이 아주 차가운 야외 수영장에 갔었는데 한달만에 드디어 열었다. 옆 실험실 사람이 지나가다가 '너 기분 좋아보인다'랄 정도로 신이 나서 종일 근질근질 하고 있다가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도 보던 얼굴이 꽤 보인다. 수영장에 몸집이 거대한 여자분이 수경이나 수영모도 안쓰고 검은 수영복에 긴 붉은 머리를 물살에 나부끼며 눈을 꼭 감고 미역을 머리에 감은 고래마냥 천천히 헤엄치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오픈한 첫날 또 나와서 반가웠다. 이 여인은 턴 할 때도 우우웅하고 천천히 돌고 발장구도 정말로 규칙적으로 쳐서 너무 신기하다. 중간에 전혀 쉬지도 않고 정말 유유히 누비는 것이, 우아한 고래같아요!라고 얘기해주고 싶음.

3. 여기는 사람들이 몸매 신경 전혀 안쓰고 수영복을 고르기 때문에 나도 나이 XX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비키니를 입어 보았다흠흠. 체형 커버되는 걸루다가 신중하게 골라서 입었더니 은근히 괜찮아보이는 게 이 사람들이 이래서 비키니를 너도나도 입는가 하고. 아무튼 죽기 전에 비키니라는 걸 다 입어보았다는 이야기.



일중독 구구



1. 한국에서 석사할 때 밤낮없이 일해야되던 게 너무 힘들었었는데 여기 와서는 밤은 안새고 월화수목금금토 정도 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는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시키는 분위기도 아니지만 스스로 주말 스케줄을 텅텅 비워놓고 언제나 일에 투입될 수 있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나는야 일중독자..

2. 최근 일이 너무 몰려서 이러다 정말 과로+스트레스사하겠다 싶어서 몇주 전부터 수영장에 나가려고 하는 중이고, 현재 꽤 규칙적으로 가고 있다. 근데 운동 시작하면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근육부피가 늘어나는 중이라 한시라도 빨리 근육이 탄탄하게 자리잡길 기다리는 중 ;ㅁ;  한국서 접영 배우다 와서 불완전한 한팔접영만 하고 있는데 가끔 수영장에서 접영 꽤 잘하는 남자를 보면서 부러워하는 중.

3. 연말까지 휴가로 쓸 수 있는 날이 17일인데 휴일에 일하면 이거 휴가일로 더해서 쓸 수 있을 지 궁금하다. 비서한테 물어봐야지 ;ㅁ; 올해 휴가를 안쓰면 내년에 몰아서 쓸 수 있다는 말은 들은 것 같은데..

4. 오늘도 일하러 와서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산더미같은 분량을 보고 있자니 감히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이러고 있다. 아아 일중독이여..월요일이 휴일이라 월요일날 쉬면 되지 뭐 그러면서 일하러 온 가련한 일중독자여...!!



또 폭탄 구구



우리 동네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묻었던 폭탄이 어제 또 발견되었단다. 우리 아파트 역시 대피령이 내려온 구역에 있었는데 집에서 인터넷도 안되고 독일 방송도 들을 리가 없는 터라 집에서 잤다. 확성기 방송도 했다는데 나는 왜 몰랐던 건지;; 어쩐지 집 앞 수퍼가 이른 시간에 문을 닫았더라니. 다른 친구 말로는 길에 경찰이 쫙 깔려있었다고 한다. 수퍼가는 길에는 못봤는데;; 연중행사인가 싶게 작년 이맘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 때는 해체하다가 폭발하는 바람에 인명손실도 있었다. 뮌헨 갔을 때도 기차역 근처에서 폭탄이 발견되어서 다른 역에서 내렸었고. 독일 알고보면 은근 변수가 많은 나라인 듯.



근황/부활절 휴가 구구



1. 논문을 내고 며칠 기절해 있다가 이제 실험을 다시 시작해볼까 하던 차에 한달 전쯤 신청했던 튀빙엔에서 하는 특별강좌가 그 다음주라는 걸 알고 부랴부랴 기차표랑 숙소를 예약하고 일주일 동안 다녀왔다. 이론 쪽에 부족한 게 많아서 그 부분은 즐겁게 들었지만 실험부분은 거의 다 아는 부분이라 좀 지루했다. 의사들이 꽤 많이 참가한 코스라 실험이 그랬던 듯...그치만 그들은 수업들을 때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는 걸;; 마지막 날에는 병원투어를 시켜줬는데 수술실에 들어가서 사람 수술하는 것도 구경했다 (사실은 이게 하이라이트였다고 생각하는 중;;). 유스호스텔에 머물렀는데 4인1실을 1~2명의 투숙객과 같이 썼다. 위층에서 애들이 뛰어다니고 같은 방 동양인 할머니가 코를 골며 주무시는 바람에 며칠 고생했지만, 창문을 열면 백조와 보트가 떠다니는 강이 보이는 점이나 깔끔했던 것 등등 전반적으로는 괜찮은 숙소라고 생각한다 (근데 유스호스텔은 젊은이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란 말인가..나도 이미 막 젊은이는 아니게 되어가고 있지만 나이 제한은 없는 건가요?). 튀빙엔은 전반적으로 대학도시에 가까운 곳이라 괴팅엔이랑 비슷하지만 도심에 건물이 좀더 밀집되어 있고, 좀더 경관이 아름답고 날씨도 좋은 곳이었다. 수업이 끝난 금요일에는 호헨튀빙엔이라는 성에도 가봤는데, DNA를 최초로 분리한 실험을 여기서 했다고 한다. 토요일엔 키큰 나무들이 양쪽에 쭉 서있는 공원에서 햇살아래 각종 새소리를 들으며새똥폭탄을 맞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읽던 소설 한권을 끝냈다.

2. 르귄의 소설 네 권을 들고와서는 1년 반이 되도록 왠지 손이 안 가서 전공관련 된 글이 아니면 한글로 된 책만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튀빙엔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길고 짐도 무거워서 큰맘먹고 한 권을 골라서 갔는데 의외로 술술 읽혀서 놀랐다. 예전에 선배와 진행하던 사적인 번역 프로젝트 때 적합한 단어들을 찾느라고 고생했던 기억이 있는데 어쩌면 그게 원어소설을 멀리하던 이유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친구의 소감으로는 르귄의 원어본을 볼 때 좀더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꽤 비슷하다고 느꼈다. 누군가는 르귄의 문체에서 치유받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는데 나도 그래서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을 주는 부분이 어투인지, 사건을 그려나가는 태도인지, 사건의 진행 방향인지, 아니면 모두 다인지 잘 모르겠고 분석할 생각도 해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삶에 종착역이랄까 그런 게 있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왔었는데,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삶은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서는 안 될 것이나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건 사실 환상에 가깝고, 나는 언제나 원하지 않는 것에서 걸어나갈 수 있다고...

3.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부활절 휴가다. 사실은 수요일부터 휴일 분위기였지만. 금요일날은 실험실 동료 몇 명이랑 프로그램 동기, 아는 한국사람 몇 명, 인도인 실험실 동료가 불러온 인도인 15명과 함께 연구소 정원에서 바베큐 파티를 했다. 인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좀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람들이랑은 인사도 안하고 자기들끼리만 얘기하는 사태가 벌어져서 좀 맘에 안들었다. 거기에 낄 수 없었던 나머지 사람들끼리 놀았는데 그래도 나름 괜찮았던 듯. 얘기하다보니 우리 실험실 동료 중 하나가 인명구조원 자격이 있는 수영인(?)이더라! 아아, 못다배운 접영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줄기 희망을 갖게 하는 흐뭇한 순간이었다. 이래저래 맘에 안드는 구석도 있고, 특히 불판에 들어가는 숯이 얼마나 필요한지 몰라서 동료가 집에 가서 숯을 가져와야 했던 일도 있었지만 순조롭게 돌아갔던 것 같다. 스테이크, 꼬치구이, 샐러드, 과자, 후식 등등 4시부터 9시까지 엄청나게 먹고 수다떨다가 끝났다. 왠지 왕수다를 떨고 싶은 날이었는데 목표량을 채우지 못한 것만 같은 아쉬움에 12시까지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동료 옆에 붙어앉아서 나불나불하다가 집에 들어왔다.

4. 독일에 온 이후로 이웃에 좀 예민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새집으로 온 이후에는 별 일은 없다. 단지 한 이웃이 밤일할 때 너무 크게 소리를 질러서 무슨 일 난 줄 알았던 것만 빼면. 우리 실험실 테크니션 아줌마한테 얘기했더니 귀엽게도  "나는 주변에 아무도 듣는 사람 없다는 게 확실할 때만 그러는데 걔 이상하다" 그러시는 거다. 아줌마 최고!

5. 논문 제출하기 전까지 거의 매일 실험실에 나오다시피 했더니 주말에 쉬는 게 너무 어색한 거다. 그래도 좀 쉬기는 해야된다며 일요일은 침대에 붙어앉아서 이미 본 미드를 돌려보며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다. 휴일의 마지막인 오늘은 인도인 동료와 금요일날 안굽고 남은 립을 점심으로 구워먹고 티라미수 케익 한판을 후식으로 끝장내고 인터넷을 몇 시간째 하고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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